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한민국의 우주개발사 (문단 편집) === [[1970년대|1970]]-[[80년대]] === [[1970년]] [[공군사관학교]]의 박귀용, 조옥찬 교수팀이 [[과학기술처]]의 지원을 받아 아스팔트 추진체를 연료로 하는 AXR-55호 로켓을 발사했다. [[1971년|다음해]]에는 AXR-73호, [[1972년]]에는 AXR-300호를 개발했다. 참고로 55호와 73호, 300호의 숫자는 개발된 횟수가 아니라 [[센티미터]]를 적용한 로켓의 지름을 뜻했다. [[1972년]]부터 [[국방과학연구소]]에서 [[박정희]] 대통령의 특명을 받아 미사일 개발을 시작하게 된다. 그렇게 탄생한 것이 [[현무 미사일|현무]] 지대지 미사일의 전신인 백곰이다. [[1978년]] 12월에 제정되었던 항공공업진흥법이 존재했으나 이 법안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해 [[1980년대]] [[민주정의당]] 정책 위원회 산하의 [[2000년대]] 국가발전 연구 특별위원회에서 항공우주산업에 대한 기술 개발 촉진과 산업정책 방향에 대한 연구를 하기 위해 항공 우주산업정책추진위원회를 구성했고 [[1986년]] 2월부터 본격적인 법안이 작성, 심의되었다. 전문가와 관계기관들의 협의를 거친 후 [[1987년]] [[12월 4일]]자로 제정공포된 법률 제3991호 항공우주산업개발촉진법이 시행되면서 본격적인 과학 로켓 개발에 착수하게 된다. 이후 [[1989년]] [[10월 10일]], [[한국항공우주연구원]]이 창설되고 [[한화(기업)|한화]]를 비롯한 다양한 [[방산업체]]가 참여해 로켓을 제작하게 된다. 이후 국가 우주개발 중장기계획을 발표하게 되는데, 발표된 요지는 다음과 같다. ||[[1995년]]부터 [[2015년]]까지 20년을 계획기간으로 하여 ① 위성체 분야에서 총 19기(통신위성 5기, 다목적위성 7기, 과학위성 7기)의 위성을 개발하여 저궤도 소형인공위성의 국내 독자개발 능력과 국제공동위성개발사업의 주도적 참여능력을 구축하며, ② 발사체 분야는 위성발사체 시스템기반기술 확보(1단계), 500-700kg급 위성의 600-800km 궤도진입능력 확보(2단계), 그리고 우주발사체지원(3단계) 능력을 구축하고, ③ 위성이용 및 우주탐사분야에서는 통신방송 및 지구관측 등의 위성이용 핵심기술의 자립, 우주관측 및 우주정거장 등의 국제 협력사업 참여, 위성관제 및 수신기술 자립 그리고 국내 원격탐사센터 설립, 위성자료의 국가적 이용체계 구축 등을 추진하여 2015년에는 우주개발의 자립능력을 확보할 것을 목표한다.|| 또한 다목적 실용위성사업이 진행되어 [[1996년]] 말까지 통산산업부, 과학기술처, 정보통신부 등이 참여해 국가프로젝트 형태로 진행되어 왔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